국문시가 (Vernacular Korean Poetry)
쉽게 풀면
한글로 쓰인 우리 옛 시와 노래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에요.
왜 중요한가
국문시가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로 창작된 시조·가사·악장·잡가 등을 아우르므로, 한시와 대비해 표기 문자가 시가의 형식과 향유층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논문에서 기본 범주입니다. 한글 표기가 곧 국문 창작을 뜻하지 않고 구전 노래의 기록일 수 있어, 창작과 기록의 관계를 검토하는 연구의 대상이 됩니다. 국문시가라는 범주 설정 자체가 한글 창제를 문학사의 분기점으로 특권화하는 서술 방식이어서, 표기 문자의 전환을 문학사 시대 구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방법론적 성찰과도 맞물립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국문시가의 등장이 표기 수단의 변화가 문학사적 전환을 가져온 사례임을 보여준다.
새로운 표기 수단의 도입이 곧바로 독자적 형식 확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국문시가 초기의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
조금 더 깊게 보면
국문시가와 고전시가는 자주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전자는 표기 기준이고 후자는 시대 기준이어서 향가처럼 향찰로 표기된 시가는 국문시가에 넣을지 애매합니다. 또한 시조가 한글로 기록되기 전에 이미 한시로 번역되어 전하는 경우가 있어, 국문/한문의 구분이 창작 시점의 언어를 반영하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국문시가는 한글이라는 새로운 문자가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창작과 감상의 문법 상당수는 오랜 한문학 수련을 거친 사대부의 미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자의 교체가 곧 문학적 감수성의 즉각적 교체를 의미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주의할 점
국문시가를 한문학과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하며, 상당 기간 국문시가와 한문학이 병행·교섭하며 발전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국문 표기가 곧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개방된 창작 환경을 뜻하는 것은 아니어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상당 기간 국문시가의 주된 창작층은 한문 소양을 갖춘 사대부 남성이었고, 향가나 고려가요처럼 한글 이전에 향찰이나 구전으로 전해진 노래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