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예술 (Anti-Art)
쉽게 풀면
'이게 예술이야?'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일부러 예술답지 않은 것을 예술이라고 내세우는 태도예요. 예컨대 예술가가 일부러 서툴고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를 벌여 관객에게 '이것도 예술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때, 그것이 반예술적 제스처의 전형이다.
왜 중요한가
반예술은 다다가 기존 예술 제도와 가치를 거부하며 내세운 태도로, 예술이 자기 부정을 통해서도 예술로 존속한다는 역설을 보여 주어 예술 정의론의 시험 사례가 되었습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플럭서스의 이벤트, 상황주의의 데투르느망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설명하는 상위 개념입니다. 페터 뷔르거의 『아방가르드의 이론』(1974)은 반예술 제스처가 제도로 회수되는 과정을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패로 분석했습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리히터는 다다이즘을 반예술 운동으로 규정하며, 부르주아적 예술 제도와 미적 관습에 대한 조소와 저항으로 분석했다.
뷔르거는 반예술적 제스처가 결국 미술관과 시장 제도에 흡수되는 역설적 과정을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한계로 분석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반예술은 예술 자체의 폐지가 아니라 특정 예술 관념(부르주아적 자율 예술, 미적 관조)에 대한 부정이며, 그 부정이 다시 미술관에 수집되는 순환이 반복됩니다. 뒤샹 자신이 '반예술'이라는 말을 꺼렸고 '무예술(anartiste)'을 선호했다는 점도 알아 둘 만합니다. 네오다다가 반예술 제스처를 반복했을 때 그것이 비판인지 양식화인지가 뷔르거 논쟁의 핵심입니다. 뒤샹의 《샘》(1917)은 반예술 제스처의 전형으로 인용되지만, 뒤샹 자신은 이를 예술의 완전한 부정이 아니라 '망막적' 예술(눈의 즐거움만 추구하는 회화)에 대한 지적 도전으로 설명했다. 네오다다 예술가들이 다다의 반예술 제스처를 다시 반복했을 때, 그것이 원래의 저항성을 유지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익숙한 양식으로 소비된 것인지가 뷔르거 논쟁의 핵심 쟁점이었다.
주의할 점
반예술이 '예술의 완전한 부정'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며, 역설적으로 예술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반예술이 미술관에 수집되는 순간 그것이 애초의 저항적 의미를 유지하는지, 아니면 상품화되어 무력화되는지는 뷔르거 이후에도 계속 논쟁 중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