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럭서스 (Fluxus)
쉽게 풀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유머러스하고 즉흥적인 이벤트와 퍼포먼스를 실천했던 1960년대 국제적인 예술가 네트워크예요.
왜 중요한가
플럭서스는 1962년 조지 마추나스가 조직한 국제 네트워크로, 이벤트 스코어·우편 미술·멀티플·콘서트를 통해 예술과 일상, 작가와 관객,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케이지의 실험음악 수업에서 나온 브레히트·히긴스·오노 요코·백남준·보이스의 활동이 연구 대상이며, 다다와 네오다다의 계승, 해프닝과의 차이, 개념미술의 선례로서의 지위가 주요 논점입니다. 유머와 반제도적 유통 전략은 이후 네트워크 미술과 관계미학 연구에서 참조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플럭서스는 상품화된 미술품 대신 일시적이고 참여적인 이벤트와 저렴한 복제품을 선호하여, 다다의 유산을 확장했다는 뜻이다.
백남준이 플럭서스 활동가로서 벌인 실험적 공연들이, 훗날 그가 비디오 아트를 만들 때 밑바탕이 된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석한 연구이다.
조금 더 깊게 보면
플럭서스는 양식이 아니라 태도와 유통 네트워크였으며, 마추나스의 조직 시도와 참여 작가들의 자율성 사이에 끊임없는 긴장이 있었습니다. 마추나스가 1963년 선언에서 표명한 반예술적·집단주의적 입장은 참여자 다수의 입장과 달랐습니다. 해프닝(캐프로)이 확장된 환경 속의 다감각적 사건이었다면 플럭서스 이벤트는 극도로 단순하고 반복 가능한 지시문이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의 맥락에서만 보면 그의 플럭서스 시기가 사라집니다.
주의할 점
플럭서스는 단일한 양식이 아니라 매우 느슨하게 연결된 국제적 예술가 네트워크였으므로, 특정한 시각적 스타일로 통일해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