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다다 (Neo-Dada)
쉽게 풀면
다다이즘의 반항적인 태도를 다시 가져와서, 일상 물건을 작품에 사용하며 새로운 길을 찾던 1950년대 미국 미술이에요.
왜 중요한가
네오다다는 1950년대 후반 라우션버그의 컴바인, 존스의 깃발과 표적, 케이지의 우연 음악을 다다의 부활로 지칭한 비평 용어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표현과 팝아트의 대중 이미지 사이의 전환기를 설명합니다. 뷔르거가 아방가르드의 반복을 '네오아방가르드'의 실패로 규정한 데 대해 할 포스터가 「누가 네오아방가르드를 두려워하는가?」에서 반박한 논쟁의 핵심 사례이며, 뒤샹의 재발견과 레디메이드의 미국적 수용을 다루는 연구에서 필수입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네오다다는 일상 사물과 결합 기법을 재도입하여, 추상표현주의의 몸짓적 주관성과 팝아트의 사물성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전통적 회화 방식을 넘어, 실제 사물을 화면에 결합시킨 작업 방식이 네오다다의 핵심 전략 중 하나였음을 설명하는 서술이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네오다다'는 작가들이 거부한 비평적 명칭이며 라우션버그와 존스는 다다의 반예술적 파괴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회화의 확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뒤샹 자신은 네오다다가 자신의 레디메이드에서 미적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며 비판적이었습니다. 유럽의 누보 레알리슴과 일본의 네오다다 오거나이저즈(1960)는 같은 시기 유사한 경향이지만 맥락이 다르므로, '네오다다'를 국제 양식으로 일반화하면 안 됩니다.
주의할 점
네오다다는 원조 다다이즘의 급진적 정치성보다는, 미국적 맥락에서 형식적·재료적 실험에 더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성격 차이가 있다. 네오다다는 다다의 허무주의적 반예술 태도를 계승하되, 실제 정치적 혼란기(1차대전) 산물이었던 원조 다다와 달리 전후 소비사회의 이미지와 오브제를 다룬다는 시대적 맥락 차이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