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브라 그룹 (CoBrA)
쉽게 풀면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그룹으로(그래서 이름이 코브라), 아이들 그림처럼 자유롭고 원색적인 그림을 그렸어요.
왜 중요한가
코브라(1948~51)는 코펜하겐·브뤼셀·암스테르담의 머리글자를 딴 국제 그룹으로, 아스게르 요른, 콘스탄트, 카렐 아펠, 도트르몽이 어린이·민속·정신질환자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자발적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전후 유럽에서 초현실주의의 이론적 교조주의와 기하학적 추상 양쪽을 거부한 '제3의 길'로서, 앵포르멜·타시즘과 함께 유럽 전후 추상의 지형을 그릴 때 필수입니다. 요른과 콘스탄트가 이후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에 합류해 데투르느망과 도시론으로 이어진 계보도 중요합니다. 코브라 회원들은 개별 서명보다 공동 캔버스 작업(한 사람이 시작한 그림을 다른 회원이 이어 그리는 방식)을 실험해, 개인 양식보다 집단적 즉흥과 협업을 앞세운 태도를 보여 준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코브라 그룹 예술가들은 아동화와 민속 이미지를 참조하여, 파리의 추상미술과는 구별되는 즉흥적이고 색채가 강렬한 표현주의적 어법을 발전시켰다는 뜻이다.
여러 작가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집단 창작 방식이 개인 중심 화단과 다른 점으로 논의된다는 뜻이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코브라는 3년밖에 존속하지 않았고 양식보다 태도(실험, 집단 창작, 반엘리트주의)로 묶인 그룹이므로, 표현주의적 붓질만으로 규정하면 정치적 지향을 놓칩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와의 유사성은 표면적이며, 코브라는 마르크스주의와 북유럽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두었습니다. 요른의 후기 작업(수정된 회화,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은 코브라 미학의 이론적 연장으로 읽힙니다. 코브라의 기관지 『코브라』는 시와 그림, 이론을 나란히 배치해 매체 위계를 흐렸으며, 이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도 다른 방식으로 무의식적 표현을 추구한 것이었다.
주의할 점
코브라 그룹은 1951년경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지만, 그 실험적 정신이 이후 여러 유럽 아방가르드 흐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