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사학(실증주의 사학) (Positivist Historiography)
쉽게 풀면
추측이나 이념보다는 확실한 증거에 근거해서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근대 역사학이 학문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한국사학사에서도 일제강점기 문헌고증 중심의 연구 흐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다만 지나치게 사실 나열에 그친다는 비판도 받는다.
왜 중요한가
일제강점기 이병도 등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실증적 사료 검증을 통해 한국사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 흐름으로, 식민사관에 맞서 한국사의 독자적 발전상을 학문적으로 규명하려 한 시도로 평가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실증사학이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적 토대를 마련한 흐름으로 평가되는 맥락을 보여준다.
실증사학이 사료를 다루는 구체적 방법론을 학술적으로 살펴본 사례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실증사학은 민족주의 사학의 이념적 서술이나 사회경제사학의 이론 적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념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지만, 지나치게 개별 사실 고증에 치중해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성 제시에는 소홀했다는 비판도 함께 존재합니다. 진단학회의 『진단학보』 간행과 개별 사료 고증 논문의 축적은 이 흐름의 대표적 성과로 꼽히며, 이는 실증적 방법론 자체를 한국사 연구의 기본 훈련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시기 실증사학자들은 개별 사건의 연대와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데 주력했는데, 이러한 축적된 고증 성과는 이후 다른 사관을 취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기초 자료로 계속 활용되고 있습니다. 실증사학의 방법이 사료 고증에는 엄밀했지만 그 고증의 결과를 어떤 사관으로 종합할지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략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주의할 점
실증사학은 해석과 이론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어 사건의 인과관계나 구조적 맥락을 놓칠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실증사학 계열 학자들 중 일부가 해방 이후에도 총독부 시기에 형성된 사료 해석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어, 실증적 태도와 특정 사관으로부터의 독립은 별개의 문제로 검토해야 한다. 실증사학의 고증 성과를 활용할 때에도, 그 고증이 어떤 문제의식과 사관 아래 이루어졌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성과와 한계를 균형 있게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