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일성 문제 (Non-Identity Problem)
쉽게 풀면
지금 아이를 가지면 평생 지속되는 병을 안고 태어나고, 두 달 미루면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 봅시다. 지금 임신하는 선택이 잘못이라고 말하려면 누가 해를 입었는지 지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태어난 그 아이는 부모가 기다렸다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사람입니다. 두 달 뒤에 태어났을 아이는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 아이의 삶이 그래도 살 만한 것이라면, 그 아이는 그 선택 덕분에 존재하는 셈이어서 더 나빠졌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 중요한가
기후 정책, 자원 고갈, 생식 기술 규제처럼 미래 세대를 다루는 논의는 거의 전부 이 문제를 지나갑니다. 정책 선택이 누가 태어날지까지 바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특정 개인이 입은 손해로 환원하려는 인격 영향 원리가 어디까지 통하는지를 드러내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어떤 에너지 정책을 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경로와 만남이 달라지고 결국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므로, 미래 세대에게 해를 끼쳤다는 표현이 곧바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누가 손해를 봤는지 따지는 대신 어느 쪽 세계가 전체적으로 더 좋은 세계인지를 비교하자는 우회로를 다룬 것으로, 개인 중심 윤리에서 인구 윤리학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됩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는, 그 규제가 없었다면 바로 그 아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경우에는 설득력을 잃는다는 분석입니다. 규제 논거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파핏이 정식화한 이 문제에는 크게 세 갈래 대응이 있습니다. 첫째는 해악을 반사실적으로 더 나빠짐이 아니라 일정 문턱에 못 미치는 상태로 다시 정의하는 길입니다. 둘째는 인격 영향 원리를 포기하고 세계 전체의 좋음을 비교하는 길인데, 이 경로는 곧장 혐오스러운 결론과 마주칩니다. 셋째는 누구도 더 나빠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못일 수 있다는 해악 없는 잘못을 인정하는 길입니다. 논의에서는 인원 구성이 그대로인 동일 인구 사례와 구성이 달라지는 상이 인구 사례를 구분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주의할 점
비동일성 문제는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가 없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그 의무를 특정 개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형태로는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진단일 뿐입니다. 결과가 행위자 통제 밖의 사정에 좌우된다는 도덕적 운 문제와도 성격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