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결론 (Repugnant Conclusion)

철학
한 줄 정의: 삶의 질이 겨우 살 만한 수준이어도 인구가 충분히 많으면 더 좋은 세계라는, 총합 공리주의가 피하기 어려운 반직관적 귀결입니다.

쉽게 풀면

진하게 탄 주스 한 잔과, 물을 잔뜩 부어 거의 맹물에 가까운 주스 수백만 잔을 떠올려 봅시다. 잔마다 든 맛을 모두 더하기만 하면 맹물 쪽이 이깁니다. 세계의 좋음을 사람들의 행복을 더한 값으로 평가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아주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 백억 명 있는 세계보다, 겨우 살 만한 정도의 삶을 사는 사람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많은 세계가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파핏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에서 이 귀결을 혐오스럽다고 불렀습니다.

왜 중요한가

인구 윤리학이라는 분야가 사실상 이 결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서 출발했습니다. 공리주의가 인구 규모가 달라지는 상황까지 확장될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 주며, 기후 정책이나 인구 정책처럼 사람 수 자체가 변수인 문제를 평가할 때 어떤 원리를 쓸 수 있는지 검증하는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저자는 평균 공리주의로 전환해도 혐오스러운 결론을 피하는 대가로 가학적 결론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평균 행복을 기준으로 삼으면 평균을 낮추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운 삶 몇 명을 추가하는 편이 낫다는 식의 또 다른 이상한 귀결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본 연구는 임계 수준 공리주의가 혐오스러운 결론을 차단하는 방식과 그 이론적 비용을 분석하였다."

일정 문턱을 넘는 삶만 세계의 좋음에 더한다고 규정하면 결론은 막히지만, 문턱 아래 삶에 음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검토입니다.

"연구자는 인구 윤리학의 불가능성 정리를 근거로 혐오스러운 결론이 특정 이론만의 결함이 아님을 논증하였다."

직관적으로 그럴듯한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하는 인구 평가 원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식적 결과를 들어, 이 문제가 공리주의만의 약점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결론은 세계의 좋음을 개인들의 좋음의 총합으로 보는 총합주의와, 삶의 좋음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는 전제가 만나면서 도출됩니다. 회피 전략으로는 평균값을 쓰는 평균 공리주의, 일정 문턱을 기준선으로 삼는 임계 수준 이론, 삶의 질과 양을 사전식으로 서열화하는 접근, 그리고 존재하게 될 사람은 평가에 넣지 않는 인격 영향 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각 전략마다 가학적 결론이나 역혐오 결론 같은 대가가 따르며, 여러 불가능성 정리는 모든 직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길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주의할 점

혐오스럽다는 이름은 이 결론이 반박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직관에 어긋난다는 사실의 표시일 뿐입니다. 일부 학자는 오히려 우리의 직관 쪽을 의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고통의 최소화를 우선하는 부정적 공리주의와도 다른 논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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