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문학 (Existentialist literature)
쉽게 풀면
정해진 의미나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룬 문학이에요.
왜 중요한가
실존주의문학은 사르트르의 『구토』와 카뮈의 『이방인』을 철학과 소설의 결합으로 읽게 해 주므로, 전후 유럽 문학과 사상의 관계를 다루는 논문에서 중심 범주입니다. 한국의 1950년대 전후문학이 실존주의를 어떻게 수용했는지가 오래된 연구 주제여서, 이론 수용사와 창작사를 잇는 개념으로도 쓰입니다. 또한 실존주의 문학은 카뮈의 부조리 개념과 함께 논의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통적 가치 체계가 붕괴한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책임 문제를 다루는 서사로 자리매김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실존주의문학의 핵심 개념인 부조리가 인간과 세계 사이의 근원적 단절에서 비롯됨을 설명한다.
이 문장은 실존주의문학의 핵심 발상이 원산지인 프랑스뿐 아니라 전쟁을 겪은 한국 사회의 소설에서도 비슷한 인물 유형과 서사로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카뮈는 자신을 실존주의자로 부르는 것을 거부했고 사르트르와 결별했으므로, 두 사람을 실존주의문학으로 함께 묶는 것은 편의적 분류입니다. 또한 실존주의문학이 '허무주의'로 요약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르트르의 참여 개념은 오히려 행동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한국 전후문학의 실존주의 수용은 원전보다 일본어 번역과 저널리즘을 거친 것이어서, 수용의 경로를 검토하지 않으면 영향 관계를 과장하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소설과 희곡으로 구현하며, 인간이 미리 주어진 본성 없이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실존주의 철학을 서사 형식으로 옮겼다.
주의할 점
실존주의문학을 부조리극과 동일시하기 쉬우나, 실존주의문학은 철학적 주제 의식을 전통적 서사 형식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부조리극은 형식 자체를 비논리적으로 해체한다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