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주의 (Dialetheism)
쉽게 풀면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을 봅시다. 참이라면 내용대로 거짓이고, 거짓이라면 그 말이 맞으니 참입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는 이 상황을 보고 어딘가 숨은 가정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며 범인을 찾아 나섭니다. 양진주의자는 다른 길을 택합니다. 이 문장은 정말로 참이면서 거짓이며, 그것이 이 문장의 정체라고 그냥 인정하는 것입니다. 문틀에 반쯤 걸친 사람이 방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방 안에 없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왜 중요한가
거짓말쟁이 역설이나 러셀의 역설 같은 난제를 우회하는 대신 정면으로 수용하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무모순율이 정말 논증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최고 원리인지 되묻게 만들었고, 모순에서 아무 결론이나 나오는 것을 막는 초일관 논리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역설을 피하려고 언어를 대상 언어와 상위 언어로 나누는 위계 전략을 쓰지 않아도 되므로 이론이 단순해진다는 이점을 주장한 것입니다. 일상 언어에 가까운 의미론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전 논리에서는 모순 하나만 참이어도 임의의 모든 명제가 따라 나오므로, 그 도출 규칙을 먼저 막지 않으면 참인 모순을 인정하는 순간 이론이 무의미해진다는 지적입니다.
상대의 주장을 부정해도 상대가 두 쪽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반박이라는 행위 자체가 힘을 잃는다는 실천적 반론입니다. 논리적 문제가 아니라 대화의 규범을 겨냥한 비판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양진주의는 초일관 논리를 배경으로만 성립합니다. 고전 논리에는 모순으로부터 임의의 명제가 도출되는 폭발 원리가 있어서, 참인 모순 하나를 인정하면 모든 문장이 참이 되어 이론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역설의 논리라 불리는 체계처럼 폭발을 무효화하는 논리를 쓰면 참인 모순을 국소적으로 품고도 이론이 유지됩니다. 참인 모순의 후보로는 의미론적 역설, 소박한 집합론의 역설, 서로 충돌하는 법 규범,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 순간 등이 거론됩니다.
주의할 점
양진주의는 모든 모순이 참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일부 모순이 참이라는 훨씬 제한된 주장입니다. 또 초일관 논리를 연구한다고 해서 곧 양진주의자인 것도 아닙니다. 폭발 원리를 거부하는 일은 참인 모순을 인정하지 않고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