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적 오류 (naturalistic fallacy)
쉽게 풀면
무어는 '좋음'이 단순한 자연적 성질(예: 쾌락)로 정의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은 쾌락을 준다. 그런데 이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만약 좋음이 쾌락과 완전히 같은 뜻이라면 이 질문은 무의미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의미 있는 질문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열린 질문 논증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념이다.
왜 중요한가
무어가 제기한 개념으로 '좋음'과 같은 도덕적 속성을 쾌락이나 진화적 적응 같은 자연적 속성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를 자연주의적 오류로 규정해, 좋음이 자연적 속성으로 정의될 수 없는 단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핵심 주장
- 무어는 『윤리학 원리』(1903)에서 ‘좋음(good)’이 단순하고 분석할 수 없는 비자연적 성질이라고 주장합니다. 좋음을 쾌락, 욕구의 충족, 진화적 적응 같은 다른 성질과 동일시하면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 근거는 열린 질문 논증입니다. 좋음이 어떤 성질 N과 같다면 “이것은 N이다. 그런데 이것은 좋은가?”라는 질문이 무의미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의미 있는 질문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음은 N과 같지 않습니다.
- 무어는 이를 정의에 관한 오류로 보았습니다. 형이상학적 성질(예: 신의 뜻에 맞음)로 좋음을 정의하는 것도 똑같이 오류라고 했습니다.
- 프랑케나(1939)는 이 이름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적’ 성질에 한정되지 않고, 윤리적 개념을 비윤리적 개념으로 정의하는 모든 시도이며 이를 ‘정의주의적 오류(definist fallacy)’라 부르는 편이 낫다고 했습니다. 또 정의가 틀렸는지를 논증 없이 오류라고 부르면 선결문제를 가정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근거와 대표 연구
같은 이름으로 흔히 섞여 쓰이는 세 가지는 다른 주장입니다.
| 이름 | 무엇에 관한 것 | 핵심 |
|---|---|---|
| 무어의 자연주의적 오류 | ‘좋음’의 정의 | 좋음을 다른 성질과 동일시하는 정의가 틀렸다 |
| 흄의 ‘이다-해야 한다’ 문제 | 추론 | 사실 진술만으로 당위 진술을 도출할 수 없다 |
| 자연에 호소하는 오류 | 자연스러움의 가치 | 자연적이므로 좋다/부자연스러우므로 나쁘다 |
한국어 논문에서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이 중 두 번째의 뜻으로도 자주 쓰입니다. 어느 뜻인지는 문맥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비판과 한계
- 열린 질문 논증이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한다는 비판: 올바른 분석에도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라는 질문은 열려 보일 수 있습니다(분석의 역설). 열린 질문이라는 사실만으로 동일하지 않음을 보였다고 할 수 있는지 논쟁됩니다.
- 종합적 동일성에 의한 응답: 20세기 후반 윤리적 자연주의자(보이드, 브링크, 레일턴 등)는 ‘좋음’이 ‘물이 H₂O’인 것처럼 개념 분석이 아니라 경험적 발견으로 얻은 자연적 성질과의 동일성일 수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경우 열린 질문이 남아도 동일성은 성립할 수 있습니다(Darwall, Gibbard, & Railton, 1992).
- 무어의 대안: 좋음이 비자연적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인식론적 물음이 남습니다. 무어는 직관에 호소했고 이 점이 비판받았습니다.
- 이름의 문제: 오류인지, 또 ‘자연주의적’인 것에만 해당하는지 모두 논쟁이 있으므로 이 용어를 쓸 때는 무어의 의미임을 밝히는 편이 안전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실제 논문에서
이 용어를 직접 쓴 국내 논문 문장을 아직 수집하지 못했습니다. 수집되는 대로 출처와 함께 싣겠습니다.
예시 문장
아래는 용어의 쓰임을 보여 주려고 만든 예시로, 실제 논문에서 가져온 문장이 아닙니다.
도덕적 속성을 자연적 속성으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무어의 비판을 보여준다.
좋음을 자연적 성질과 같다고 단정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지적한 것이 이후 여러 윤리학 논의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이 논증(열린질문논증)이 실제로 모든 형태의 윤리적 자연주의를 성공적으로 반박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있으며, 현대의 여러 자연주의적 윤리이론은 이 비판에 대응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무어의 열린질문 논증은 이 오류를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로, '쾌락은 좋음이다'처럼 좋음을 자연적 속성으로 정의한 뒤에도 '그런데 쾌락이 정말 좋은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유의미하게 열려 있다면 그 정의가 좋음의 의미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본다.
무어는 좋음을 쾌락이나 진화적 적응처럼 자연적·경험적 속성으로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를 이 오류의 사례로 지목했으며, 이 때문에 그는 좋음이 더 이상 다른 개념으로 분석될 수 없는 단순하고 정의불가능한 속성이라는 윤리적 비자연주의를 주장했다.
주의할 점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형식논리학적 오류인지, 하나의 실질적 철학적 논쟁인지에 대해서는 이후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이 명칭과 달리 무어가 지적한 오류는 엄밀히 말해 자연적 속성에 대한 정의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초자연적) 속성으로 좋음을 정의하는 시도에도 똑같이 적용되므로, '자연주의적'이라는 이름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헷갈리기 쉬운 용어
자연주의적 오류와 가까운 용어입니다.
| 용어 | 무엇에 관한 것 | 비고 |
|---|---|---|
| 자연주의적 오류 | 좋음의 정의 | 무어(1903) |
| 열린 질문 논증 | 자연주의적 오류를 뒷받침하는 논증 | 정의가 틀렸음을 보이는 방법 |
| 이다-해야 한다 문제 | 사실에서 당위로의 추론 | 흄(1739–40)에서 유래 |
| 메타윤리학 | 윤리 개념의 의미와 지위를 다룸 | 자연주의 논쟁이 벌어지는 분야 |
| 도덕 실재론 | 도덕적 사실의 실재 | 비자연주의와 자연주의 실재론이 갈림 |
참고 문헌
- Moore, G. E. (1903). Principia Ethica. Cambridge University Press.
- Frankena, W. K. (1939). The naturalistic fallacy. Mind, 48(192), 464–477.
- Hume, D. (1739). A Treatise of Human Nature (Books I–II; Book III published 1740). John Noon.
- Darwall, S., Gibbard, A., & Railton, P. (1992). Toward fin de siècle ethics: Some trends. The Philosophical Review, 101(1), 115–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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