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론적 역사서술 (Teleological Historiography)
쉽게 풀면
역사가 처음부터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전제하고, 모든 사건을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설명하는 서술 방식이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과거를 그 결과에 꿰맞추어 해석하기 쉽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휘그사관이나 진보사관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왜 중요한가
목적론적 역사서술은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가가 과거를 그 결과를 향한 준비 과정으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휘그사관과 진보사관에 대한 비판에서 핵심 개념입니다. 특정 사건을 '필연적'이라 서술하는 논문의 논리 구조를 점검할 때 유용한 분석 도구입니다. 한국사에서는 내재적 발전론이 근대를 목적으로 전제했다는 비판이 이 개념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결과를 필연으로 전제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서술 태도를 보여준다.
결말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과거를 되짚으면 실제로는 여러 갈래였던 가능성을 하나의 필연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조금 더 깊게 보면
결과를 아는 것 자체는 피할 수 없으므로 문제는 결과를 원인으로 뒤바꾸는 논리이며, 결과에서 출발하는 회고적 설명과 목적론적 설명은 구분해야 합니다. 목적론 비판이 모든 방향성 서술을 부정하는 것으로 확대되면 장기 변화를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마르크스주의 단계론과 근대화론이 모두 이 비판의 대상이지만, 두 이론 내부에도 목적론을 거부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목적론적 서술과 단순히 장기적 경향성을 서술하는 것은 다른데, 전자는 그 경향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했다고 전제하는 반면 후자는 그 경향이 여러 우연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은 결국 근대화될 운명이었다'는 식의 서술은 실제로 조선 후기에 존재했던 여러 다른 정치적 선택지와 경로를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서술의 전형적인 예로 지적됩니다.
주의할 점
목적론적 서술은 실제로 존재했던 대안적 가능성과 우연성을 지워버릴 위험이 있다.
목적론을 피하려다 지나치게 우연만을 강조하면 반대로 장기적인 구조적 경향 자체를 설명하지 못하는 또 다른 극단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