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사학 (Nationalist Historiography)
쉽게 풀면
역사를 민족이라는 하나의 주체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 온 이야기로 그리는 역사학이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각국에서 자국사를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한국사에서는 일제강점기 신채호 등의 사학이 대표적이다.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지만 다른 집단의 역사를 배제하거나 왜곡할 위험도 지적된다.
왜 중요한가
민족주의 사학은 박은식·신채호 이래 식민사관에 맞서 한국사의 주체성을 세우려 한 흐름으로, 해방 후 한국사학의 문제 설정을 오랫동안 규정했습니다. 그 서술 방식과 개념 장치를 분석하는 사학사 연구와, 그것이 국민국가사관과 공유하는 전제를 검토하는 비판적 연구가 병존합니다. 동아시아 3국의 민족주의 사학을 비교하면 역사 갈등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대응으로서 민족주의 사학이 형성된 역사적 맥락을 보여준다.
이 문장은 민족을 중심에 둔 역사 서술이 국가 형성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살펴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민족주의 사학을 하나로 묶으면 신채호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이후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 서술 사이의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1990년대 이후 탈민족주의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이 비판이 곧 식민사관의 부활이라는 반비판도 있어 논쟁이 정치화되기 쉽습니다. 민족 개념 자체가 근대의 산물인지 전근대에 원형이 있었는지는 이 사학의 전제를 검토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신채호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규정한 것은 민족을 서술의 주체이자 저항의 행위자로 설정한 대표적 명제로, 이후 민족주의 사학의 서술 문법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박은식은 국가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라 하여 국권을 잃어도 역사, 곧 국혼(國魂)을 통해 독립의 근거를 지킬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망명지에서 역사서술이 곧 독립운동의 수단이었던 시대적 조건을 반영합니다.
주의할 점
민족을 초역사적이고 고정된 실체로 전제할 경우 민족 형성의 역사적 과정 자체를 간과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신채호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이후 국가가 주도한 관제 민족주의 서술은 목표와 성격이 크게 달라, 시기별로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