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전리각석 (Cheonjeon-ri Petroglyphs)
쉽게 풀면
울산에 있는 바위 유적으로, 여러 무늬와 나중에 새겨진 글자가 함께 남아 있어요. 마름모나 동심원 같은 기하학적 무늬가 선사시대에 새겨졌고, 그보다 훨씬 후대인 신라시대에는 사람들이 다녀간 사실을 알리는 글귀가 그 위에 덧새겨졌습니다.
왜 중요한가
기하학적 문양과 후대의 명문이 함께 새겨져 있어,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의 신앙과 기록 문화가 중첩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다뤄진다. 울산 태화강 상류에 위치한, 기하학 문양과 사람·동물 그림이 함께 새겨진 암각화 유적이다. 기하학 문양과 인물·동물상이 함께 새겨져 있어, 청동기시대 이후 여러 시기에 걸쳐 중복 제작된 암각화의 층위적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로 다뤄진다. 청동기시대부터 이후 시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그림이 추가된 것으로 추정되어, 하나의 장소가 여러 세대에 걸쳐 신성한 공간으로 지속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천전리각석에 여러 시대의 흔적이 겹쳐 있어 오랜 기간 계속 이용된 장소였음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바위에 새겨진 신라시대 글귀가 화랑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해석되어 문자 자료 연구에도 쓰임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문양의 제작 시기와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제기되어 있어, 특정 시기나 의미로 단정하기보다 다양한 학설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물상과 기하학 문양이 중첩되어 새겨진 양상은 서로 다른 시기에 걸쳐 반복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암각화의 상대편년 연구에 활용된다. 가장 늦은 시기의 명문에는 신라 법흥왕대(525년 원명, 539년 추명) 왕족의 방문 기록이 포함되어, 이 장소가 매우 오랜 기간 주목받았음을 보여준다. 기하학 문양은 청동기시대, 인물·동물상과 명문은 그 이후 시기에 추가된 것으로 추정되어, 하나의 바위 면이 여러 세대에 걸쳐 신성한 장소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주의할 점
천전리각석의 기하학적 문양과 후대 명문은 제작 시기가 크게 다르므로 함께 해석할 때 시기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여러 시기의 그림이 중첩되어 있어 개별 도상의 제작 시점을 정확히 분리해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