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Parousia)
쉽게 풀면
예수님이 세상 끝에 다시 이 땅에 오신다는 믿음. 파루시아는 그리스도가 역사의 끝에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고 만물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재림 사건을 가리키는 신약성서의 용어로, 신자들에게는 소망의 근거로, 심판의 대상에게는 경고로 제시된다.
왜 중요한가
그리스도의 사역이 초림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고 봄으로써, 현재의 고난과 불완전함 속에서도 신자들에게 궁극적 소망을 제공하는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 사건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재림에 대한 믿음은 현재의 고난과 불의가 역사의 최종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확신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종말론 전체가 지향하는 궁극적 완성의 지점으로 이해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이는 재림 개념이 언어적 기원에서부터 특정한 종말론적 함의를 지니고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초대교회가 재림을 얼마나 가깝게 느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성서 본문을 소개한 문장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재림의 시기를 문자적으로 예측하려는 시도는 성서 본문에서 오히려 그 시기를 알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것과 배치되어, 대부분의 주류 신학은 구체적 시기 예측보다 깨어 있는 삶의 태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파루시아라는 그리스어 단어 자체는 본래 헬레니즘 세계에서 왕이나 고위 관료가 도시를 공식 방문하는 것을 가리키는 정치적 용어였으며, 신약성서는 이 표현을 그리스도의 재림이 갖는 왕적·주권적 성격을 드러내는 데 차용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재림 때 죽은 신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있는 신자들이 그 뒤를 이어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묘사하는데, 이 본문은 이후 휴거 교리 논의의 성서적 근거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주의할 점
재림의 정확한 시기와 양상에 대한 해석은 교파와 신학자에 따라 상당히 다르므로 특정 해석을 유일한 정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재림의 정확한 시기를 계산하려는 시도는 예수 자신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는 복음서 기록과 배치되기 때문에, 대다수 신학 전통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재림은 은밀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이가 보게 될 공개적 사건으로 신약성서는 일관되게 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