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말살통치 (National Obliteration Policy)
쉽게 풀면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우리말과 우리 성씨까지 없애려 하며 전쟁에 강제로 동원했던 통치 방식이다.
왜 중요한가
민족말살통치는 창씨개명, 신사 참배 강요, 조선어 교육 폐지, 강제 동원을 하나의 논리로 묶어 전시 식민 지배의 성격을 규정하는 개념으로, 강제 동원과 위안부 문제 연구의 배경을 제공합니다. 총독부 정책 문서와 동원 관련 명부는 피해 규명 연구의 핵심 사료입니다. 내선일체 담론의 분석은 동화 정책의 논리와 모순을 드러내는 담론분석 사례입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이 문장은 정책의 구체적 시행 내용을 설명한다.
구체적인 통치 수단을 통해 민족성 말살과 전쟁 동원이 동시에 추진되었음을 보여준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말살'이라는 표현은 정책의 결과를 강조하지만, 일본 측은 동화를 내세웠으므로 동화와 차별의 병존이라는 모순을 분석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입니다. 무단·문화·민족말살의 3단계 구분은 편의적이며 1930년대 중반의 전환 시점과 연속성은 연구자마다 다르게 봅니다. 이 시기 조선인의 대응을 저항과 협력으로만 나누면 강제와 유인 사이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선택을 놓치게 됩니다. 민족말살통치는 창씨개명, 조선어 교육 금지, 신사참배 강요 등을 통해 민족 정체성 자체를 제거하려 했으며, 중일전쟁 이후 전시 총동원 체제와 맞물려 강도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이 시기 조선어학회 사건처럼 우리말 연구 자체를 독립운동으로 간주해 탄압한 사례는 언어와 민족 정체성이 통치의 핵심 표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황국신민서사 암송과 궁성요배 강요는 일상적 의례를 통해 식민지 신민을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동화시키려 한 구체적 통치 기술이었습니다. 이 시기 학교에서는 조선어 과목이 사실상 폐지되고 일본어 상용이 강요되어, 다음 세대의 모어 습득 기회 자체가 크게 제약되었습니다.
주의할 점
이 시기 일제는 강제징용·일본군 위안부 동원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였다는 점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민족말살통치를 문화통치의 단순 연장으로 보면, 정책의 목표 자체가 동화에서 말살로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놓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