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와 야사 (Official History and Unofficial History)
쉽게 풀면
국가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편찬한 역사서를 정사라 하고, 개인이 사적으로 기록하거나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정리한 역사서를 야사라 부른다. 정사는 공식적 권위를 지니지만 정치적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기도 하며, 야사는 정사에 담기지 않은 세부 정보나 다른 관점을 담고 있어 함께 참고할 가치가 있다.
왜 중요한가
정사와 야사의 구분은 동아시아 사료의 성격을 판단하는 기초 범주로, 실록 같은 관찬 기록과 연려실기술 같은 사찬 기록을 어떻게 대조하고 신뢰도를 배분할지가 조선 시대 연구의 실제 문제입니다. 야사에만 남은 정치 사건의 내막이나 인물 평가는 정사가 배제한 정보를 보여 줍니다. 관찬사서와 사찬사서의 관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정사의 공백을 야사로 보완하는 사료 활용 방식을 보여준다.
누가 역사를 기록했는지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는, 사료 비판의 기본 원칙을 보여준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정사가 신뢰할 수 있고 야사는 믿을 수 없다는 통념은 정사도 편찬자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며 야사에도 당대 기록에 근거한 것이 많다는 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야사라는 범주가 매우 넓어 개인 문집의 기록과 후대의 설화집을 한데 묶으면 사료 비판이 어렵습니다. '정사'는 중국에서 기전체 왕조사를 가리키는 특정 용어이기도 하여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다릅니다. 야사류 가운데도 연려실기술처럼 여러 문헌을 인용하며 출처를 밝힌 사찬 사서는 단순한 일화집과는 사료적 가치가 다르므로, 야사라는 범주 안에서도 사료로서의 신뢰도를 다시 세분해서 평가해야 한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인용한 400여 종 문헌의 출처를 조목마다 밝혔다. 정사와 야사의 구분 자체도 편찬 주체가 국가인지 개인인지에 따른 것이어서 곧바로 신뢰도의 우열을 뜻하지는 않는다.
주의할 점
야사는 흥미 위주의 윤색이나 후대의 첨가가 포함되기 쉬워 정사보다 더 엄격한 사료비판이 필요하다. 야사에 실린 일화가 후대에 여러 차례 전재되며 조금씩 각색되는 경우가 있어, 최초 출전을 확인하지 않고 인용하면 오류가 누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