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화와이국화 (Domestication and foreignization)
쉽게 풀면
번역할 때 원문의 낯선 느낌을 없애고 자연스럽게 옮기는 방식과, 일부러 원문의 낯선 느낌을 남겨두는 방식 중 어느 쪽을 택할지의 문제예요.
왜 중요한가
자국화와 이국화는 로런스 베누티가 『번역가의 비가시성』에서 슐라이어마허의 구분을 되살려 정식화한 대립쌍으로, 번역이 목표 언어의 관습에 맞춰 매끄럽게 읽히게 할 것인지 원문의 낯섦을 보존할 것인지를 윤리적·정치적 선택으로 다룹니다. 영미 출판 시장의 유창성 규범이 타문화를 지우는 방식을 비판한 이 논의는 번역학과 세계문학 연구에서 번역 전략을 평가하는 기본 틀이 되었습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자국화 전략이 번역가의 존재를 은폐하고 원문의 이질성을 소거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매끄럽게 다듬지 않고 원문의 낯선 표현을 그대로 남긴 구체적 번역 사례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베누티의 이국화는 원문의 문법을 그대로 옮기는 직역이 아니라 목표 언어의 지배적 규범을 교란하는 전략이므로, 어색한 번역이 곧 이국화라는 이해는 잘못입니다. 또 이 대립은 영어라는 지배 언어로의 번역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한국어처럼 주변부 언어로 번역할 때는 이국화가 오히려 지배 문화의 권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맥락에 따라 윤리적 함의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슐라이어마허가 애초에 던진 질문은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갈 것인가,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올 것인가'였는데, 베누티는 여기에 영미 출판계의 유창성 규범이라는 구체적 역사적 조건을 결합해 이국화를 소수 언어와 문화의 가시성을 지키는 정치적 실천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한 번역 안에서도 문장 층위에서는 자국화를, 고유명사나 관용구 층위에서는 이국화를 택하는 식으로 두 전략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실제로는 더 흔합니다.
주의할 점
자국화와 이국화를 단순한 문체적 선택 문제로 오해하기 쉬우나, 베누티는 이를 문화적 권력 관계와 관련된 윤리적·정치적 문제로 다루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