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Begging the Question (Petitio Principii))
쉽게 풀면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는 아직 증명해야 할 것을 마치 이미 증명된 것처럼 전제에 슬쩍 끼워 넣는 오류이다. 예를 들어 '이 약은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효과가 있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효과가 있는 성분'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왜 중요한가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는 결론을 전제 속에 이미 포함시켜 논증하는 순환적 추론으로, 형식적으로는 타당해 보이지만 실질적인 논증력을 결여한다는 점에서 형식논리와 비형식 논리학 모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신 존재 증명이나 자유의지 논쟁 등에서 상대방의 논증이 실은 결론을 전제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데 자주 쓰이는 비판 도구입니다.
핵심 정리
- 전통적 이름은 라틴어 petitio principii(원리의 청구)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 전서』 II권 16장에서 논의됩니다. 증명해야 할 것을 증명 없이 가져다 쓰는 일을 가리킵니다.
- 전형적인 모습은 전제를 받아들일 이유가 결론을 이미 받아들이는 데 있는 논증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결론에 의문을 갖는다면 같은 의문이 전제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 형식으로 보면 “P, 그러므로 P”도 타당합니다(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거짓일 수 없음). 문제는 타당성이 아니라 증명 기능의 결여입니다. 새로운 근거를 주지 못합니다.
- Walton(1985)은 순환적 구조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설명이나 정의, 정합적 체계를 다룰 때는 순환이 정상일 수 있고, 문제는 그 순환이 설득하려는 토론의 맥락에서 증명 노릇을 하지 못할 때입니다.
- 결론이 전제와 같은 말로 적혀 있지 않아도 성립합니다. 동의어나 정의,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바꾸어 넣은 경우도 해당합니다.
예시로 보기
| 논증(가상) | 결론이 숨은 곳 |
|---|---|
| 이 책은 믿을 만하다. 책에 그렇게 쓰여 있고, 그 책은 믿을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 ‘믿을 만하다’는 결론이 두 번째 근거에 이미 들어 있음 |
| 이 약은 효과가 있다. 효과가 있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효과가 있는 성분’이라는 표현이 이미 효과를 전제함 |
| 우수한 학생은 성적이 높다. (우수한 학생을 ‘성적이 높은 학생’으로 정의함) | 정의 속에 결론이 들어 있어 결과가 처음부터 정해짐 |
마지막 유형은 연구에서 조심할 대목입니다. 변수를 정의할 때 결과 변수의 내용을 이미 끼워 넣으면 “발견”한 결과가 사실은 정의의 반복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불안한 사람”을 불안 척도 점수가 높은 사람으로 정의하고 “불안한 사람은 불안 점수가 높다”를 연구 결과로 보고하면 새로운 정보가 없습니다.
자주 하는 오해
| 오해 | 바로잡기 |
|---|---|
| 순환논증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 형식적으로는 타당합니다. 부당한 것이 아니라 비생산적입니다. |
| ‘begs the question’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 일상 영어에서 흔히 그렇게 쓰이지만 논리학 용어로는 순환적 가정을 뜻합니다. 두 용법을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
| 전제와 결론이 같은 단어를 써야 성립한다. | 다른 말로 바꿔 쓴 경우가 오히려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
| 귀류법이나 정의 도입은 모두 순환이다. | 정당한 증명 절차는 결론을 전제로 삼지 않고 도출합니다. 전제가 결론과 독립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가 기준입니다. |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실제 논문에서
이 용어를 직접 쓴 국내 논문 문장을 아직 수집하지 못했습니다. 수집되는 대로 출처와 함께 싣겠습니다.
예시 문장
아래는 용어의 쓰임을 보여 주려고 만든 예시로, 실제 논문에서 가져온 문장이 아닙니다.
논증에서 사용된 핵심 개념의 정의 자체에 이미 증명하고자 하는 결론이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어, 논증이 실질적인 근거 제시 없이 결론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 문장은 결론에서 쓰인 개념이 전제에서 이미 증명 없이 가정되어 있는 다른 사례를 보여 줍니다. 앞의 예문이 처벌의 정의를 통한 사형제 옹호 사례를 다뤘다면, 이 문장은 정책의 정당성 논증이라는 다른 맥락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일상 영어에서 'begs the question'이 흔히 '의문을 제기한다'는 뜻으로 오용되지만, 논리학 용어로서는 순환 논증을 가리키는 엄밀한 개념입니다. 전제와 결론이 명시적으로 동일하지 않고 다른 말로 표현되어 있을 때 순환성을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실제 논증 분석에서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주의할 점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는 순환논증과 매우 밀접하지만, 반드시 명시적으로 결론을 전제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나 용어 선택을 통해 은연중에 결론을 가정하는 좀 더 미묘한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헷갈리기 쉬운 용어
‘따라 나오지 않음’과 ‘이미 들어 있음’을 구분합니다.
| 용어 | 문제의 성격 | 한 줄 구분 |
|---|---|---|
| 선결문제 요구 | 전제가 결론에 의존 | 결론이 전제 안에 이미 들어 있음 |
| 논점 일탈 | 전제와 결론의 연결 부재 | 결론이 전제에서 따라 나오지 않음 |
| 허수아비 공격 | 반박 대상의 바꿔치기 | 상대가 하지 않은 주장을 공격 |
| 동어반복(tautology) | 내용이 없는 참 | 항상 참이라 정보량이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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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Walton, D. N. (1985). Are circular arguments necessarily vicious? American Philosophical Quarterly, 22(4), 263–274.
- Hamblin, C. L. (1970). Fallacies. Methuen.
- Copi, I. M., Cohen, C., & McMahon, K. (2014). Introduction to Logic (14th ed.). Pe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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