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합적 다원주의 (Agonistic Pluralism)
쉽게 풀면
경기장의 두 팀을 떠올려 봅시다. 서로 이기려 하지만 상대를 없애려 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규칙을 인정하기 때문에 상대는 적이 아니라 경쟁자입니다. 샹탈 무페는 민주 정치도 이래야 한다고 봅니다. 이견을 토론으로 녹여 하나의 합의로 만들려는 시도는, 녹지 않은 갈등을 제도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밀려난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훨씬 거친 적대의 형태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갈등을 없애는 대신 경합의 규칙 안에 붙잡아 두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왜 중요한가
담론윤리학이나 공적 이성처럼 합의를 지향하는 숙의 모형에 대한 대표적 비판축입니다. 최근 포퓰리즘과 극단 정치의 부상을 합의 정치가 갈등을 오래 억눌러 온 결과로 진단하는 분석틀로 정치학과 사회 이론 논문에서 널리 인용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이성적 토론의 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요구들이 사라지는 대신 제도 밖에서 적대적 운동으로 터져 나온다는 진단으로, 합의 지향 민주주의를 겨냥한 이 입장의 핵심 논거입니다.
어디까지가 정당하게 인정할 경쟁자이고 어디부터가 배제해야 할 적인지 그 선을 그을 원리가 모호하다는 반론입니다. 이론의 실천적 적용 가능성을 겨냥한 대표적 비판입니다.
주민 사이의 대립을 합의 도달에 실패한 상태로 보는 대신, 서로의 요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 채 계속 이어지는 경합으로 읽어 낸 사례 연구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무페는 정치의 바탕에 친구와 적의 구분이 놓여 있다는 슈미트의 통찰은 받아들이되, 그 적대를 경합으로 전환하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의 과제라고 봅니다. 경쟁자는 서로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요구를 관철하려는 투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여기에 갈등적 합의라는 개념이 놓입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징적 준거에는 함께 동의하되 그 해석을 두고는 끝까지 다투는 상태입니다. 사회에 본질적 정체성이 미리 주어져 있지 않다고 보는 후기구조주의의 반본질주의가 이론적 배경입니다.
주의할 점
경합적 다원주의는 갈등을 미화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핵심은 적대를 규칙 있는 경합으로 전환하는 제도 설계에 있습니다. 또 모든 입장을 똑같이 인정하라는 상대주의와도 다릅니다. 민주적 준거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은 경합의 상대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