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본문 (Textus Receptus)
쉽게 풀면
공인본문은 에라스무스 등이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 사본을 바탕으로 이후 여러 판본을 거쳐 정착된 신약 본문을 말합니다. "공인된, 받아들여진 본문"이라는 뜻 그대로, 당시 유럽 교회들이 널리 인정하고 사용한 표준 텍스트였습니다. 이는 이후 킹제임스 성경 등 여러 초기 근대어 번역의 저본으로 쓰였습니다. 비유하자면 인쇄술 시대에 만들어진 '표준판' 원고와 같은 위치를 가졌습니다.
왜 중요한가
공인본문은 근대 이후 등장한 비평본(critical text)과 비교되며 본문비평 논쟁의 핵심 축을 이룹니다. 번역사 연구, 성경 번역본 비교 연구, 본문비평학 논문에서 특정 번역본이 어떤 본문 전통에 기초했는지를 설명할 때 필수적으로 언급됩니다. 공인본문은 종교개혁기 성경 번역, 특히 영어 흠정역의 신약 번역 저본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녔으며, 오늘날에도 일부 교단에서는 이 본문 계열을 여전히 선호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번역본의 저본 계열을 설명하는 번역사 연구에서 이 용어가 사용된 예문입니다.
본문비평 방법론 논문에서 비교 대상으로 이 개념이 등장한 사례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공인본문은 후대에 발견된 더 이른 시기의 사본들(예: 파피루스, 대문자 사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근대 본문비평학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네슬레-알란트 판과 같은 현대 비평본이 학계의 주류 텍스트로 자리 잡았지만, 일부 전통 진영에서는 여전히 공인본문의 권위를 지지합니다. 공인본문은 16세기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판본에서 출발한 본문 계열로, 이후 근대에 발견된 더 오래된 사본들을 반영한 비평본과 달리 상대적으로 후대의 비잔틴 계열 사본을 주로 따른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평본과 구별됩니다.
주의할 점
공인본문을 '원본'과 혼동해서는 안 되며, 이는 어디까지나 후대에 편집된 사본 전통 중 하나입니다. 또한 공인본문 지지 여부가 곧바로 신학적 보수성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본문 계열은 에라스무스가 참고할 수 있었던 사본 수가 많지 않았고 일부 구절은 라틴어 불가타 역본을 그리스어로 역번역해 채워 넣은 부분도 있어, 현대 비평본 학자들은 이를 원문 재구성의 최종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