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불가능한 숭고 (Unpresentable Sublime)
쉽게 풀면
말이나 그림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을,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예컨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예술작품이 참상을 직접 재현하는 대신 텅 빈 공간이나 침묵으로 표현할 때, 그 여백 자체가 재현불가능한 숭고를 환기시킨다.
왜 중요한가
리오타르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재현 불가능한 것 자체를 형식적으로 암시함으로써, 명료한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감각을 환기시킨다고 보아 포스트모던 예술의 전략을 칸트의 숭고 개념을 통해 재해석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했습니다.
핵심 주장
- 출발점은 칸트의 숭고입니다. 칸트(1790)에서 숭고는 무한이나 전체 같은 이성의 이념을 감각적으로 제시하려다 상상력이 실패할 때 생기며, 그 실패가 불쾌와 함께 이성의 능력에 대한 쾌를 낳습니다.
- 리오타르는 이 ‘제시(재현)할 수 없는 것’(the unpresentable)을 예술 이론으로 옮겨, 재현의 불가능을 내용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 안에서 느끼게 하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과제라고 봅니다(「숭고와 아방가르드」, 1984).
- 그는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1982)에서 두 태도를 구분합니다. 근대의 숭고는 재현 불가능을 내용으로 두되 형식은 알아볼 수 있게 유지해 일종의 향수를 남기고, 포스트모던의 숭고는 형식 자체가 재현 불가능을 드러내도록 하는 쪽입니다. 그에게 포스트모던은 시대가 아니라 근대 안에서 되풀이되는 계기에 가깝습니다.
- 대표 사례로 바넷 뉴먼의 거대한 색면 회화가 드는데,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지금 일어난다’는 사건 자체를 마주하게 한다는 해석입니다.
근거와 대표 연구
- 주요 텍스트: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가 부록으로 실린 『포스트모던의 조건』 영역본(1984), 「숭고와 아방가르드」(The Lyotard Reader, 1989 수록), 그리고 칸트의 숭고 분석을 직접 다룬 『숭고의 분석론 강의』(Lessons on the Analytic of the Sublime).
- 선행 이론: 칸트(1790)의 수학적·역학적 숭고(수학적 숭고, 역학적 숭고)와, 공포와 경이를 숭고의 기원으로 본 버크(숭고와 미의 기원), 자연의 거대함에서 고양을 찾은 낭만적 숭고가 배경입니다.
- 확장: 리오타르는 재현·증언의 한계 문제를 예술 밖으로도 넓혔습니다(『쟁론』, 1983).
- 미술사에서의 쓰임: 추상표현주의 색면회화, 미니멀리즘, 빈 공간이나 침묵을 이용한 기념·추모 작업을 이 틀로 해석한 논의가 있습니다.
비판과 한계
- 칸트 독해가 선택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칸트에게서 숭고는 상상력의 실패에서 이성의 우위를 확인하는 데로 이어지는데, 리오타르는 실패 자체의 증언에 무게를 둡니다.
- ‘포스트모던’의 쓰임이 미술사의 통상 용법과 다릅니다. 리오타르의 예는 뉴먼, 뒤샹 같은 모더니즘 아방가르드가 많아, 차용·혼성모방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미술과 곧바로 겹치지 않습니다.
- 아방가르드 중심의 옹호라는 점에서 엘리트주의라는 비판과, 하버마스의 ‘미완의 기획으로서의 근대’ 입장과의 논쟁 구도가 따라붙습니다.
- ‘추상화는 숭고하다’처럼 단순화하면 핵심인 재현의 실패 증언이라는 논점을 놓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실제 논문에서
이 용어를 직접 쓴 국내 논문 문장을 아직 수집하지 못했습니다. 수집되는 대로 출처와 함께 싣겠습니다.
예시 문장
아래는 용어의 쓰임을 보여 주려고 만든 예시로, 실제 논문에서 가져온 문장이 아닙니다.
리오타르는 칸트의 숭고 개념을 재해석하여, 아방가르드 예술이 재현 불가능성 자체를 증언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고 보았다.
이 문장은 그림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명확히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았는데도, 오히려 그 알 수 없음 자체가 관람자에게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재현불가능한 숭고는 낭만주의적 숭고가 자연의 거대함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전제하는 것과 달리, 대상 자체가 아니라 재현의 불가능성이라는 형식적 실패 자체에서 숭고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숭고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향을 갖습니다. 리오타르는 「숭고와 아방가르드」(1984)에서 바넷 뉴먼의 거대한 단색 색면 회화가 서사나 형상 없이 순전히 '지금 일어난다(occurs)'는 사건성 자체를 제시한다고 해석했다.
주의할 점
이 개념은 칸트의 숭고론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이념의 우위 대신 재현 불가능성 자체의 증언에 방점을 찍는 재해석이다.
이 개념을 그냥 '추상화는 숭고하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면, 리오타르가 강조한 재현의 실패 자체를 증언한다는 윤리적·철학적 논점을 놓치게 된다. 또한 이 개념은 특정 작품이 실제로 무엇을 재현하지 못했다는 실패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현의 한계 자체를 예술의 적극적 전략으로 승격시킨다는 점에서 전통적 재현 미학과 근본적으로 결을 달리한다.
헷갈리기 쉬운 용어
숭고 계열 용어는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습니다.
| 용어 | 핵심 | 강조점 |
|---|---|---|
| 재현불가능한 숭고 | 재현할 수 없는 것을 형식으로 암시하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전략 | 재현의 실패 자체의 증언 |
| 숭고 | 표상 능력을 압도하는 대상·경험이 낳는 고양된 미적 감정 | 상위 개념 |
| 낭만적 숭고 | 거대한 자연 앞의 경외와 자아의 확장 | 구체적 자연 대상 |
| 수학적 숭고 | 크기의 거대함 앞에서 상상력이 좌절되고 이성이 전체를 사유함 | 칸트의 분류 |
| 역학적 숭고 |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이성적 자율성을 자각함 | 칸트의 분류 |
| 포스트모던의 조건 | 거대서사에서 국지적 언어게임으로의 이행을 진단한 리오타르의 책 | 같은 저자, 다른 주제 |
참고 문헌
- Kant, I. (2000). Critique of the Power of Judgment (P. Guyer & E. Matthews, Tr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790)
- Lyotard, J.-F. (1984).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G. Bennington & B. Massumi, Tran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 Lyotard, J.-F. (1994). Lessons on the Analytic of the Sublime (E. Rottenberg, Trans.). Stanford University Press.
- Lyotard, J.-F. (1989). The sublime and the avant-garde. In A. Benjamin (Ed.), The Lyotard Reader. Blackwell.
- Lyotard, J.-F. (1988). The Differend: Phrases in Dispute (G. Van Den Abbeele, Tran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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