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코뮌 (Paris Commune)

역사학
한 줄 정의: 1871년 3~5월 파리 민중이 세운 자치 혁명 정부로, 정부군의 진압으로 약 두 달 만에 무너졌다.

쉽게 풀면

파리 코뮌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뒤인 1871년 3월, 파리의 노동자와 국민방위대가 중앙정부에 맞서 세운 자치 정부입니다. 코뮌은 선거로 뽑힌 평의회가 도시를 운영하며 정교분리, 제빵공 야간노동 금지 같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5월 말 베르사유 정부군의 공격으로 '피의 주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며 무너졌습니다.

왜 중요한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초기 사례로 해석되어 사회주의·아나키즘 사상과 혁명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도시 민중 운동, 국가 폭력, 혁명의 기억과 상징 연구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에서 파리 코뮌을 노동계급 정부의 실제 형태로 평가하였다."

코뮌이 사회주의 이론 안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받았는지 보여 주는 문장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코뮌은 1871년 3월 18일 정부가 몽마르트르의 대포를 회수하려다 충돌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고, 5월 21~28일 '피의 주간'에 진압되었습니다. 희생자 수는 연구마다 추정 차이가 큽니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코뮌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원형으로 보았고, 아나키스트들은 연방주의적 자치의 사례로 보았습니다. 반면 사회사 연구는 참여자들의 동기가 계급 의식만이 아니라 공화주의, 지역 자치, 전쟁 패배에 대한 분노 등으로 다양했음을 강조합니다.

주의할 점

프랑스혁명이 1789년 이후 구체제를 무너뜨린 대혁명이라면, 파리 코뮌은 1871년 파리라는 도시에 한정된 단기 혁명 정부라는 점이 다릅니다. 중세 도시 자치체나 프랑스 기초 행정 단위를 뜻하는 일반명사 '코뮌'과도 구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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