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서사 (Grand narrative)
쉽게 풀면
'역사는 결국 이성과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처럼, 사회 전체를 하나로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거대하고 총체적인 이야기예요.
왜 중요한가
거대서사는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근대의 정당화 서사(해방·진보·절대지)를 가리킨 개념이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역사와 진리의 서사를 어떻게 해체하는지 분석하는 논문의 이론적 근거로 쓰입니다. 역사기술 메타픽션이나 한국 1990년대 문학의 '이념 이후' 논의에서 거대서사의 종언이라는 틀이 반복 참조됩니다. 거대서사 비판은 문학사 서술 자체가 하나의 총체적 발전 도식(가령 고전에서 근대로의 필연적 진보)을 전제해 온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하여, 문학사 기술 방법론에 대한 자기 성찰적 논의로도 이어집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거대서사 개념이 포스트모던 조건을 규정하는 핵심 기준으로 제시됨을 보여준다.
이는 하나의 통합된 진리 체계보다 다양하고 국지적인 서사들의 병존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리오타르의 거대서사는 이야기 형식의 문학 서사가 아니라 지식과 제도를 정당화하는 메타 담론이어서, '큰 이야기'라는 축자적 이해로 문학 작품의 규모와 연결하면 오독입니다. 또한 거대서사의 종언 선언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서사라는 자기 지시적 비판이 있으며, 제임슨은 이를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로 재해석했습니다. 한국의 1990년대 문학을 거대서사 해체로만 읽으면 그 시기의 정치적 조건이 탈각됩니다. 리오타르는 거대서사가 무너진 자리에 등장하는 것이 국지적이고 잠정적인 '소서사(petit récit)'라고 보았는데, 이는 하나의 진리로 수렴되지 않는 다수의 언어 게임들이 병존하는 상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입장이 근대의 미완의 기획인 이성적 합의 가능성 자체를 포기하는 신보수주의적 태도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반박해, 두 사상가 사이의 논쟁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대표적 이론적 대립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주의할 점
거대서사를 단순히 '길고 방대한 이야기'로 오해하기 쉬우나, 핵심은 이야기의 길이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 전체의 지식과 실천을 정당화하는 총체적 메타 담론으로 기능한다는 데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