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감정이입 (Abstraction and Empathy)
쉽게 풀면
사람들은 자연을 편안하게 느낄 때는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감정이입), 세상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는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다는(추상) 생각이에요. 예컨대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그린 목가적 그림과 극도로 단순화된 기하학적 추상화는 서로 다른 심리적 충동, 즉 감정이입과 추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중요한가
빌헬름 보링거의 박사논문 『추상과 감정이입』(1908)은 립스의 감정이입 미학에 대항해, 추상 충동이 세계에 대한 불안에서 나오는 독립적 예술 의지라고 주장하며 이집트·비잔틴·고딕 등 비자연주의 미술의 가치를 복권했습니다. 리글의 예술의지 개념을 계승했고, 칸딘스키와 청기사파, 영국의 T. E. 흄과 소용돌이파가 추상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직접 원용했습니다. 추상미술의 이론적 출생증명서로 반복 인용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보링거는 원시·비서구 미술의 추상적 양식을 유럽 고전미술의 결여가 아니라 독자적인 심리적 충동의 산물로 재평가했다.
이 문장은 보링거의 이론이 그가 다룬 원시·비서구 미술을 넘어, 근대 유럽 회화의 양식 변화를 설명하는 틀로도 확장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보링거는 현대 추상미술을 예견하거나 옹호하려 쓴 것이 아니라 미술사 방법론(자연주의를 규범으로 삼는 진보 서사 비판)을 다뤘으며, 아방가르드의 수용은 그의 의도 밖이었습니다. 추상 충동을 원시적·동양적 세계 불안에 연결한 도식은 오리엔탈리즘적 편향을 내포하고 있어 현재는 비판적으로 읽힙니다. 립스의 감정이입(Einfühlung)은 이후 영어의 empathy로 번역되어 심리학 용어가 되었으므로, 미학적 기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링거는 감정이입 충동을 유기적이고 편안한 자연 속에서 사는 민족(고전 그리스인)이 자연을 신뢰하며 생동감 있는 형태를 만드는 경향으로, 추상 충동을 자연과의 관계가 불안정하고 위협적인 민족이 초시간적·기하학적 질서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대비시켰다.
주의할 점
추상 충동을 단순한 기술적 미숙함으로 폄하해서는 안 되며, 보링거는 이를 감정이입과 대등한 독립적 미적 원리로 제시했다. 이 이론이 특정 민족이나 문화권에 고정된 심리적 성향을 부여하는 방식은 오늘날 본질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인용 시 이 역사적 한계를 함께 언급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