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신수설 (Divine Right of Kings)

역사학
한 줄 정의: 국왕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주장하며 절대왕정을 정당화한 정치사상.

쉽게 풀면

왕의 권력은 하늘(신)이 준 것이므로 누구도 함부로 거역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왜 중요한가

왕권신수설은 절대왕정의 정당화 논리를 분석할 때 핵심 개념으로, 보댕·보쉬에·제임스 1세의 저술을 통해 근대 초 정치사상의 전개를 추적하는 데 쓰입니다.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이 이를 비판하며 등장했기 때문에 근대 정치사상사의 대립 구도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와 국가의 관계 변화를 다룰 때도 등장합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보쉬에는 왕권신수설을 통해 절대군주의 권력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였다.

이 문장은 왕권신수설이 절대왕정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음을 설명한다.

"왕권신수설은 국왕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주장하며 절대왕정을 정당화한 정치사상는 점에서, 관련 논의의 분석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 문장은 왕권신수설의 정의를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앞서 쉽게 풀어 설명한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이 개념이 논문에서 분석 기준으로 쓰임을 보여준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신수설이 왕의 무제한 권력을 뜻한다고 보기 쉽지만, 왕이 신에게 책임을 진다는 논리는 동시에 왕의 의무를 규정하는 제약이기도 했습니다. 중세의 왕권 신성 관념과 근대 초의 체계화된 이론은 구별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천명 사상과 비교되지만 천명은 왕조 교체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내포하므로 단순 등치는 어렵습니다. 왕권신수설을 정교화한 저술가들도 왕이 신의 법과 자연법을 어길 경우 그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경우가 많아, 이 이론이 곧바로 무제한적 폭정을 옹호했다고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는 1598년 『자유로운 군주국의 진정한 법』에서 왕권신수설을 옹호했고, 로버트 필머의 『가부장권론』은 사후인 1680년에 출간되어 로크 『통치론』 제1론의 반박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보쉬에가 루이 14세 시기에 성서에 근거한 왕권 이론을 체계화했다. 필머의 사상은 가부장적 왕권론으로 불린다.

주의할 점

왕권신수설은 이후 사회계약론 등 근대 정치사상에 의해 비판받으며 쇠퇴하였다. 왕권신수설과 동아시아의 천명사상을 단순 비교할 때, 천명은 폭군에 대한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포함한다는 차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저술가마다 왕의 의무 범위에 대한 강조점이 달랐다는 점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처럼 서술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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