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기능주의 (Bauhaus Functionalism)
쉽게 풀면
예쁘게 꾸미는 것보다, 실제로 쓰기 좋고 대량으로 만들기 쉬운 디자인을 추구했던 유명한 독일 디자인 학교의 정신이에요. 예쁜 무늬로 장식한 의자보다, 앉기 편하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기 쉬운 의자를 더 가치 있게 여겼던 태도예요.
왜 중요한가
바우하우스(1919~33)는 예술·공예·산업을 통합하려 한 학교로, 형태가 기능과 재료의 논리에서 나와야 한다는 원칙을 교육과 생산으로 구현해 근대 디자인의 규범을 세웠습니다. 그로피우스의 선언, 이텐의 기초과정, 모호이너지의 재료 실험, 데사우 시기의 산업 협력이 연구 대상이며, 데 스틸과 구축주의의 영향을 받아 국제주의 양식으로 이어진 경로가 디자인사의 표준 서술입니다. 전후 미국(시카고 뉴바우하우스, 블랙마운틴 칼리지)으로의 이식도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그로피우스는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의 위계를 해체하고, 장인적 기술과 산업 생산을 통합하는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을 바우하우스의 이념으로 제시했다.
단순히 장식을 없애는 것을 넘어 제작 과정 자체가 형태를 결정한다는 바우하우스 미학의 핵심을 설명한다.
조금 더 깊게 보면
바우하우스가 처음부터 기능주의였던 것은 아닙니다. 바이마르 초기는 표현주의와 신비주의(이텐, 마르크스)가 강했고, 1923년 이후 한네스 마이어 교장 시기에 가장 급진적 기능주의로 갔다가 미스 반 데어 로에 시기에 다시 미학화되었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설리번의 말이며 바우하우스의 공식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바우하우스 직물·도자 공방의 여성 작가 배제 문제도 최근 연구의 초점입니다. 바우하우스의 기초과정은 이텐의 직관적·표현주의적 방법에서 모호이너지 시기의 재료 실험 중심으로 전환되었고, 이 변화가 학교 전체의 미학적 방향 전환과 맞물려 있었다.
주의할 점
바우하우스 기능주의를 단순한 '장식 없는 미니멀리즘'으로 축소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수공예 전통과 산업 생산의 종합이라는 복합적 이념을 지녔다. 바우하우스 출신 다수가 나치 집권 이후 폐교와 함께 미국 등으로 망명하면서 그 이념이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되었다는 역사적 경로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