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의 흔적 (Vestigium Trinitatis)
쉽게 풀면
어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 예술가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삼위일체의 흔적이라는 개념도 비슷한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창조 세계 어딘가에 삼위일체적 구조가 은은하게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억, 지성, 의지라는 인간 정신의 세 기능을 삼위일체의 흔적으로 보는 시도가 대표적입니다.
왜 중요한가
이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 이래로 신론과 인간론을 잇는 중요한 신학적 발상으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자연신학이 삼위일체 교리까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논하는 조직신학 논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바르트는 이러한 유비적 접근이 계시가 아닌 인간 이성에서 출발해 삼위일체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흐를 위험이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 논쟁은 자연신학과 계시신학의 관계를 다루는 20세기 신학 논의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다뤄집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에서 시도된 대표적인 심리적 유비 탐구를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종교개혁 신학자들이 이 개념에 대해 취한 유보적 입장을 보여주는 예문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삼위일체의 흔적 개념은 자연 세계, 인간 정신, 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탐구되어 왔으며, 대표적으로 심리적 유비와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유비적 논증들이 이 발상과 연결됩니다. 다만 이러한 유비는 삼위일체 교리를 증명하는 근거라기보다 이미 알려진 교리를 조명하는 보조적 장치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사회적 삼위일체론에서는 인간 정신 내부의 유비 대신, 서로 구별되면서도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인격 간의 관계 자체를 삼위일체의 흔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주의할 점
피조물의 유비로부터 삼위일체 교리 자체를 연역할 수 있다고 과도하게 주장하면 신학적 비약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유비는 계시에 근거한 교리를 뒷받침하는 보조적 설명으로 이해되는 것이 대체로 통설입니다.
이 개념을 다룰 때는 유비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해야 하며, 피조물의 유비가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를 완전히 담아낼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