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책 (Tangpyeong Policy)

역사학
한 줄 정의: 영조·정조가 붕당 간 대립을 완화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붕당의 인재를 고르게 등용한 정책.

쉽게 풀면

탕평책은 어느 한 붕당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붕당의 인물을 고루 쓰겠다는 조선 후기의 정치 방침입니다. '탕평'은 『서경』 홍범편의 '무편무당 왕도탕탕(치우침과 무리 지음이 없으면 왕도가 넓고 평평하다)'에서 따온 말입니다. 숙종 대에 논의가 나타나 영조와 정조 때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왜 중요한가

붕당 간 극단적 대립이 어떻게 조정되었는지, 그리고 조선 후기 왕권이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이해하는 핵심 정책입니다. 영조·정조 시대 정치사 연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분석 대상입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영조는 1742년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워 탕평의 원칙을 유생들에게 천명하였다."

탕평책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조치를 소개한 문장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영조의 탕평은 각 붕당의 온건파를 고루 등용하는 방식이 중심이어서 흔히 '완론 탕평'이라 불리고, 정조의 탕평은 의리와 시비를 분명히 하면서 인재를 쓰려 해 '준론 탕평'이라 불립니다. 정조는 규장각과 장용영을 통해 왕권의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탕평책은 국왕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정조 사후 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됩니다.

주의할 점

붕당정치가 여러 붕당이 경쟁하던 정치 구조라면, 탕평책은 그 구조를 국왕이 조정하려 한 정책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탕평책이 붕당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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