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론 (Stagnation Theory)
쉽게 풀면
우리나라 역사가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조선은 근대로 나아갈 내재적 발전 동력 없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논리를 가리킨다.
왜 중요한가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사가 봉건제를 거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였다고 주장하며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한 이론으로, 이는 이후 한국 역사학계가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 대표적인 식민사관의 논리로 다뤄집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이 문장은 정체성론의 논리적 근거와 그 한계를 설명한다.
정체성론이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후속 연구에 의해 학문적으로 비판받았음을 보여주는 서술이다.
조금 더 깊게 보면
정체성론은 학문적 실증보다는 식민지배 정당화라는 정치적 목적에 복무한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반박으로 등장한 자본주의 맹아론 역시 서구 발전모델을 한국사에 무리하게 적용하려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재검토가 최근 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체성론은 조선 후기 상업과 수공업의 자생적 발전(자본주의 맹아론)을 실증한 연구들에 의해 역사학계에서 사실상 폐기되었지만, 대중적 통념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이론은 조선이 봉건제 단계를 거치지 못해 일본의 10세기 무렵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본 후쿠다 도쿠조의 1904년 논문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일제 관학자들은 조선의 토지제도가 근대적 사적 소유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폈지만, 이후 연구는 조선 후기에 이미 광범위한 토지 매매와 사적 소유 관행이 존재했음을 실증했습니다.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는 광작과 농민층 분화 현상을 실증해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표적 연구로 꼽힙니다. 이 이론은 조선의 농업 생산성이 수백 년간 정체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앙법 보급과 이모작 확산 같은 실증 자료가 이를 반박합니다.
주의할 점
정체성론은 조선 후기 실학과 상공업 발달 연구를 통해 학계에서 실증적으로 반박되었다.
정체성론을 반박한다고 해서 조선 후기 경제를 곧바로 자본주의 단계로 규정하면, 자본주의 맹아론 자체가 지닌 해석의 논쟁적 성격을 간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