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수교거부정책 (Heungseon Daewongun's Isolation Policy)

역사학
한 줄 정의: 1860~70년대 흥선대원군 정권이 서양 열강의 통상·수교 요구를 무력으로 거부한 대외정책입니다.

쉽게 풀면

흥선대원군은 서양 배들이 와서 무역과 외교 관계를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고 맞서 싸웠습니다. 프랑스와의 병인양요, 미국과의 신미양요를 치른 뒤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거부 의지를 알렸습니다.

왜 중요한가

조선의 근대 이행 과정과 개항 이전 대외 인식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어서, 개항·개화 연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에서 기본 전제로 쓰입니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통상수교거부정책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며 강화되었으나, 1873년 대원군의 실각 이후 대외정책은 점차 전환되었다."

정책의 전개와 전환을 시간 순으로 서술한 예입니다.

조금 더 깊게 보면

1866년 병인박해와 제너럴셔먼호 사건, 같은 해 병인양요,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71년 신미양요가 이어지며 서양에 대한 경계가 커졌습니다. 1871년 세운 척화비에는 서양과 화친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이 새겨졌습니다. 예전에는 흔히 쇄국정책이라 불렀으나, 조선이 청·일본과는 교류했다는 점에서 교과서에서는 통상수교거부정책이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주의할 점

위정척사가 유학자들의 사상운동이라면, 통상수교거부정책은 대원군 정부가 실제로 시행한 대외정책입니다. 두 흐름은 서로 호응했지만 주체와 성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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